체중을 감량할 때면 섭취하는 음식의 양을 줄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영양이 부족한 식단을 장기간 무리해서 유지하거나, 음식을 완전히 거부하는 방식으로 체중 관리를 하다 보면 ‘섭식장애’가 찾아오기도 쉬워지기 마련이다. 흔히 거식증이라고 불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폭식증이라고 불리는 ‘신경성 폭식증’이 대표적인 섭식장애인데, 이들 모두 비정상적인 식사 습관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데다 신체와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에 경계해야 한다. 잘못된 식습관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거식증과 폭식증이 왜 위험한지 자세히 알아보자.
한 끗 차이라는 거식증과 폭식증, 차이가 뭘까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정상 범주를 벗어나 극단적으로 체중을 줄이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정신과학협회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나이나 키에 맞는 정상 체중을 유지하기를 거부함(정상 체중의 85% 이하) △저체중임에도 체중 증가나 비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을 보임 △낮은 체중의 심각성을 부정함 △자신의 체중이나 신체 크기, 외모를 왜곡하여 생각함 △여성 기준 3회 이상 연속적으로 월경을 건너뜀 등이 있을 때 진단할 수 있다. 반면 흔히 ‘먹토’라는 표현으로도 대표되는 신경성 폭식증은 다량의 음식을 급하게 먹고, 먹은 음식을 토해내는 등 제거 행동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급하게 먹는 등 반복되는 폭식 △스스로 구토를 유발하거나 설사약, 이뇨제 등을 복용하는 제거 행동 △최소한 3개월 동안, 1주일에 평균 2회 이상 폭식하거나 부적절한 보상 행동 △체형과 체중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많을 때 신경성 폭식증으로 진단된다. 두 질환은 겉보기에는 정반대의 질환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둘 모두 비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 기저에 깔려 있는 만큼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많은 편이다.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한경호 원장(탑정신건강의학과의원)은 “현대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자존감 저하 등으로 인해 신체에 대한 불만족이 발생하면서 지나치게 식사를 제한하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려운 만큼 폭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폭식을 하면 체중 증가에 대한 두려움 탓에 제거 행동을 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자존감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섭식장애 방치할수록 신체적·정신적 문제 심각해져신경성 식욕부진증이나 신경성 폭식증 탓에 제대로 된 음식 섭취를 거부할 경우, 몸은 자연스레 영양 불균형 상태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의 경우 △저체중 △저혈압 △저체온증 △빈혈 △무월경 등을 흔하게 겪으며, 장기적으로는 근골격계 약화와 심장 기능 저하, 다발성 장기 손상 등으로 이어져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정신적으로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정신질환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질환이다. 실제로 거식증으로 인한 사망률은 일반 인구보다 6배나 높으며, 약 20%는 자살로 이어졌다는 통계도 있다. 신경성 폭식증 환자의 경우 △위염 △역류성 식도염 △소화성 궤양 등의 위장 질환이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또한 잦은 구토로 인해 구강 내부가 산성화되어 치아가 손상되기도 쉬우며, △전해질 불균형 △탈수 △월경 불순 등이 동반되기도 쉽다. 정신적으로는 충동성이 강한 상태이기 때문에 알코올 등에 중독되기도 쉽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을 동반하기도 쉬워 주의해야 한다.
만성화되지 않도록 적절히 치료해야…건강한 체중 관리법은섭식장애는 초기에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수록 만성화되기 쉬운 질환이다. 문제는 섭식장애 환자는 체중 변화에 대한 두려움 탓에 스스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것이다. 만약 주변에 섭식장애를 반복하는 환자가 있다면 주변에서 함께 치료를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섭식장애로 진단되는 경우, 영양 결핍으로 인한 신체적 합병증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때 즉각적으로 정상적인 식사로 돌아가기보다는 소량의 음식과 영양 보충제를 활용하면서 점진적으로 섭취량을 늘려 나가는 것이 좋다. 갑자기 많은 양의 음식을 먹다 보면 오히려 신체에 부담이 갈 수 있는 데다, 구토와 같은 제거 행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다. 섭식장애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신적인 치료도 필수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자신에 대한 비정상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왜곡된 신체 이미지와 비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섭식장애는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을 사용한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치료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는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통해 건강한 체중 유지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체지방 감소를 위한 유산소 운동만을 하기보다는 근력 운동을 적절히 병행하며 체력을 키우고, 신진대사를 활성화하는 것이 요요 방지에 도움이 된다. 또한 하루 최소 100g의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끼니마다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적절히 섭취하는 등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해 체중이 급격하게 변화하지 않도록 하면서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한경호 원장(탑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